동대문은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패션벨리'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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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은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패션벨리'가 됐을까?
  • 이효은 기자
  • 승인 2017.03.10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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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박병두 공저 '동대문을 알자'에서
동대문 DDP 헤라서울패션위크 모습 / 사진=DDP홈페이지

[위즈뉴스] '동대문은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패션벨리가 됐을까?'

패션과 동대문에 대해 다수의 책을 집필한 정승일 국제교류교육연구원장이 쓴 책 '동대문을 알자'는 동대문 시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부터 동대문 점포창업, 관련 기관, 동대문 체험 코스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중에서 동대문시장을 세계가 주목하는 배경과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소개한다. 

한국상품, 일본패션가 점령

동대문 시장이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패션시장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나라는 일본이며, 그 뒤를 이어 타이완, 홍콩, 중국,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러시아 등에서도 '동대문 상품'이라면 사족을 못쓸 정도로 인기가 높다.

뿐만 아니라 기타 아시아(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몽골 등)나 미국, 유럽, 호주 등은 물론 저 멀리 아프리카, 남미에서도 교포를 비롯해 그 나라 바이어들이 찾아와 많은 패션용품(의류, 악세사리, 잡화 등)을 앞다투어 사가고 있다.

특히, 근래 몇년 사이 한류열품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라면 무조건 오케이인데, 주문수량도 예전과 달리 대량화되어 한번 주문에 만 장에서 십 만장 단위까지 사가는 바이어도 많다.

2008년 이후 극심한 금융위기에 따른 내수불황을 이러한 한류마니아들이 보완해주고 있다. 게다가 파리나 밀라노 등 유럽의 디자이너들까지도 방문 러시를 이루고 있다.

왜 이렇게 동대문을 찾고 있을까? 

세계적인 페션대국이라면 프랑스, 이태리, 일본 등을 꼽을 수가 있다. 특히나 일본상품들은 대부분 프랑스나 이태리, 미국 상품의 유행을 따라가거나 카피일색인 상품들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그러한 나라 일본에서 패션상품 아이디어의 대부분을 이제는 한국의 동대문에서 얻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패션의 흐름

일본의 유행은 여학생들이 창조해나간다. 이들을 일본에서는 '고갸루(여학생)'라고 하는데, 90년대 들어서 그들이 창조해낸 유행의 물결을 살펴보자면 루소(루즈삭스: Loose Socks), 메슈(Mash), 샤넬, 네일아트, 마리크와 카라콘 등 수없이 많다.

특히 도쿄의 여학생들이 학교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찾아가는 곳이 시부야의 마루뀨(109 빌딩)과 신주꾸 아루타(Alta) 그리고 이께부꾸로의 아루타(Alta), Roxy 판매점, Me Jane, Love Boat 등 패션점포이다.

새로운 패션을 창조하는 일본 패션잡지

'고갸루, 갸루(여학생)'들이 이와같은 매스컴을 타기 위해서는 자기 나름대로 개성이 뚜렷해야 한다. 이들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스타라고 손꼽히는 스타들이 속속 태어나기 시작했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가꾸고 남보다 튀어 자기만의 개성을 돋보이기위해 전략을 다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나만의 개성을 한껏 뽐낸 스타일을 하고 시부야거리를 활보하면 스트리트패션을 취재하기 위한 유명 잡지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앵글에 포착되어 잡지모델이 된다. 그리고나면 운좋게 인기모델로 향하게 되는 케이스가 많다.

고가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지역

예전에는 도쿄의 '패션메카', '패션1번지'라고 하면 당연히 긴자 '미쯔꼬시'와 니혼바시 '다까시마야' 백화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백화점들이 장기불황의 늪에 빠진 지금은 패션 즉, 유행의 진원지는 도쿄의 시부야이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패션을 리드해가는 고갸루(여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며, 그들의 아지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 바로 마꾸류 빌딩이다.

허나 요사이 아시아 여성들 사이에서 특히나 일본의 여학생은 물론이며, 일본문화를 완전히 개방한 한국의 여성, 타이완, 홍콩, 중국 등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 이 109빌딩에서 산 물건 그중에서도 'Me Jane'이나 '에고이스트' 등 유명 브랜드 상품을 사서 그 가게 쇼핑백에 넣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마치 뉴욕의 보석가게 티파니에서 생커피와 곁들어 식사하는 것과 같은 환상에 젖을 수가 있어 이를 쫓는 것이 일종의 유행병이다.

동대문 시장제품 일색인 '마루뀨(109)'

저자는 "이 '마루뀨' 빌딩에 있는 'Me Jane', '에고이스트', 'Shak Shake', 'Love Boat'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제품이 한국의 동대문시장에서 사간 것 일색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한다.

예전처럼 일본의 바이어들이 디자인을 제시해서 만든 물건이 아니라 동대문점포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디자인을 기획해서 만든 제품들이 많다. 그곳 109 빌딩에 가보면 한참 고객이 많이 몰리는 토,일요일에도 동대문시장에서 포장해 보낸 상품을 꺼내서 점포에 진열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이러한 풍경은 2000년대초까지는 지속되었다가 일시 중국제품에게 자리를 내주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여러가지 중국의 변화(인건비, 원부자재비 상승, 노조의 스트라이크 증가, 노동집약산업 홀대, 물류비 부담 등)로 바이어들이 다시 한국쪽으로 급속도로 U턴하고 있다.

책 '동대문을 알자' / 정승일, 박병두 공저, 경춘사 출간

하라주꾸에서도 판치는 동대문 상품

도쿄의 '하라주꾸'하면 서울의 강남이나 압구정동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가장 즐겨 찾아가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몇 년 전만 해도 서울의 동대문시장에서 구입한 군복 즉, 밀리터리 룩이나 나치 군복차림의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유행이 바뀌어 표범무늬 옷 즉 동물모양의 애니멀룩으로 채워져 있다.

이 옷 대부분은 한국의 동대문시장에서 사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귀고리, 코걸이, 목걸이, 팔찌, 혀찌 장식품은 물론이요 빨강, 파랑, 노랑색으로 물을 들이거나 직사각형 모양의 부분가발을 머리에 붙이고 다니는데, 이것 역시 동대문에서 구입해간 것이 대부분이다. 이제 일본의 젊은이들은 유행을 프랑스나 이태리 또는 미국에서 받아들이는 것보다 동대문시장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류열풍이 불고부터는 더욱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께부꾸로에도 동대문 상품일색

수도 도쿄의 이께부꾸로라고 하면 도쿄 근교에서 도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도쿄 근교의 고갸루들은 주말이면 신주꾸, 하라주꾸, 시부야로 몰리는데, 이때 반드시 이께부꾸로 지나치게 되어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듯이 이때 이께부꾸로의 유혹을 펼치지 못하고 머물다 쇼핑을 즐기고 가는 것이다.

헌데 이곳에 들리는 '고갸루'들이 즐겨 찾는 파루코백화점은 물론 이 근처에 있는 많은 패션숍들에서도 동대문상품이 판을 치고 있다.

일본의 패션 1번지에는 동대문 상품 일색

이처럼 일본의 패션 1번지이며, 메카인 시부야, 하라주꾸, 신주꾸, 이께부꾸로를 한국상품이 석권하고 있으며, 재래시장인 우에노의 아메야요꼬죠 시장 및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까지도 동대문시장 상품이 판을 치고 있다.

동대문시장의 현대화 바람

이제 동대문시장에서는 재래시장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져가고 있다.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다 쓰러져가는 속칭 하꼬방(판자집)이나 다름없이 초라한 상가였었다. 속 안으로 들어가보면 여기저기 벽이나 바닥이 금이 가 있고 화장실도 들어가보면 세면대나 변기의 물이 나오지 않아 악취를 풍기는 곳을 어렵지 않게 발전할 수 있으며, 쓰레기가 여기저기 쌓여있어 불쾌감을 안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러한 곳에도 현대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불을 당긴 '아트프라자'

1990년대 남대문시장 시티보이 상인들이 모여서 동대문시장에 진출해 새바람을 일으켜보려고 맨처음 들어간 곳이 바로 아트프라자 상가였다. 이곳에 현대식 건물을 짓고 약 480개 점포에 신선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탈바꿈을 시작한 것이다.

예전 전국의 도매상들은 일단 서울로 물건을 사러 오면 우선 남대문 시장부터 들러서 물건을 구입하고 나서 동대문 시장에 들러 기타 나머지 물건을 보충해 구입해서 각자 지방으로 내려갔었다.

그러나 동대문 상권에 일대 변혁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하면서 반대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이제는 동대문을 먼저 들러서 남대문으로 가는 형태로 물결의 흐름이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트프라자가 동대문상권에 진출하면서부터 이곳의 밤거리는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대낮과 같으며 새벽이 올 때까지 꺼지지 않는다.

이 아트프라자는 93-95년 사이 불과 3,4년만에 1층의 점포 권리금이 한때 5억원까지 치솟아 타 상가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그리고 연이어 디자이너클럽(95년), 우노꼬레(96년), 팀204(96년), 프레야타운(96년), 해양엘리시움(97년), 밀리오레(98년), 누죤(00년), APM(00년), 헬로APM(01년), 굿모닝시티(08년), 맥스타일(10년)이 속속 앞으로 다투어 패션몰로 등장했다.

현대식 건물

재래시장하면 꾀죄죄한 야채장소나 생선장수 아줌마가 허리에 돈주머니를 차고 노점행상을 하면서 침을 퇴퇴 엄지손가락에 뱉어가면서 돈을 세는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이제는 재래시장의 묵은 때를 깨끗이 벗고 대형 현대식 건물에서 세련된 백화점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밤영업 시도

주로 새벽과 낮 사이에 하던 장사시간을 저녁 9시부터 철야로 연장해서 새벽을 지나 낮장사까지 하도록 시도한 것이 먹혀들어간 것이다. 

이전에는 동대문시장하면 새벽시장과 낮시장만이 형성이 되어 있는 걸로 쳤으나 틈새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밤 시장이 생기기 이전 지방 소매상들은 대절버스를 타고 남대문 새벽시장 개점시간인 4시쯤에 일단 남대문시장을 들러서 물건을 사고 동대문시장을 경유해 지방으로 내려갔었다.

이때 틈새를 노린 아트프라자는 밤 11시에 남대문시장보다 4-5시간 빨리 상가 문을 열어 지방 상인들이 탄 버스가 일단 동대문에 들렀다가 남대문시장을 경유하여 지방으로 내려가도록 그 흐름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이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각 상권간에 밤 영업시간은 차츰차츰 경쟁적으로 앞당기기 시작하여 지금은 저녁 8시 무렵 개점이 일반화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지방상인들을 야금야금 흡수해버린 것이다.

저자는 "당시 버스 한 대가 오면 10-20여명의 지방상인들이 타고왔는데, 상인 한 사람이 평균 2억원어치의 옷을 사간다고 알려져있어 그 매출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세대 젊은층 공략이 주효했다

전쟁을 겪지 않고 배고픔을 모르며 풍족하게 살아온 10-20대 신세대를 타겟으로 한 상품구성에 쇼핑분위기도 그들에게 맞추기 위해 참신하고 새로운 디스크자키까지 고용해서 밤새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쾅쾅대고 틀어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세대층을 타겟으로한 음악만 내보낸 탓에 이제는 신곡을 내놓은 신세대 가수들이 동대문 디스크자키들에게 경쟁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실제로 동대문에서 히트한 노래가 방송가로 진출해 인기스타가 된 경우도 많다"고 전한다.

셔틀버스 운행

대형버스를 동원하여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는 지방상인들을 동대문시장으로 실어날랐음은 물론 부산, 대구, 대전, 전주, 광주 등까지 원정을 보내서 지방상인들을 유치했으며, 남대문시장까지 셔틀버스를 운생시켰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하여 성공하기까지에는 많은 시련도 겪었었다. 기존 동대문상인들의 반발이 무척 심했었고, 남대문시장 상인들로부터 자기 단골손님을 뺏어간다고 따돌림도 많이 당했던 것이다.

동대문시장의 디자인 기획력

저자는 "예전에는 동대문시장하면 외국상품 특히 일본상품을 가져다가 그대로 베끼는 곳으로 인식되었었다"며 "헌데 상인들의 세대교체에 따라 신세대들이 자리잡기 시작한 90년대 초반부터는 이미지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동대문상인하면 한국전쟁 당시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함경도 또순이의 억센 이미지가 떠올랐으며, 실제로 기존 상인들이라고 하면 이북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유명대 의상학과나 미대출신 그리고 일본, 프랑스나 이태리, 미국 그중에서도 일본 유학파들이 동대문시장 인근에 점포를 얻어 직접 경영하고 있는 신세대들이 많다.

결정적으로 그러한 붐이 조성된 것은 IMF의 거센 회오리 바람이 몰아친 1997년 이후이다.

갑자기 환율이 2배 가까이 뛰어 가격경쟁력을 갖게 되자 일본, 타이완, 홍콩, 중국 등 소규모 무역상 소위 보따리 무역상들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수업체들 특히 백화점은 30개가 넘게 부도가 났었다. 그 이유는 내수위주의 경영에다가 사치만 부추기는 호화 외제품 수입을 선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남, 동대문시장 점포들도 내수위주로 장사를 한 곳은 대부분 문을 닫아야 했으나, 외국바이어(일본, 타이완, 홍콩, 중국, 러시아 등)를 상대로 장사한 점포들은 오히려 IMF나 금융위기로 인하여 돈을 벌었으며, 위기에 따른 국내 불황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저자는 "이처럼 외국 바이어를 끌어들일 수 있는 힘 중에는 디자인 기획력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고 주장한다.

당시 백화점뿐만 아니라 기존 내수 유명브랜드업체들이 연쇄도산하면서 거기서 일하는 유명 디자이너들 특히나 프랑스, 이태리, 미국, 일본 등으로 유학까지 갔다 온 엘리트들이 갈 곳이 없자 동대문쪽에 진출해서 직접 점포를 얻어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뛰어난 디자인기획력이 외국바이어들에게 먹혀들어간 것이다.

파리, 밀라노에 등장한 신상품이 24시간이면 동대문에

게다가 파리나 밀라노에서 선보이는 패션용품이 2-3일 후 아니 빠르면 24시간 후 동대문시장에 어김없이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그간 신세대들 특히 프랑스, 이태리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이 2명~5명씩 떼를 지어 현지에서 합숙하면서 패션쇼나 유명쇼핑가에 새롭게 등장하는 패션상품이나 정보를 재빨리 구입하거나 본따서 한국으로 보내오면 곧바로 제작하여 동대문 점포에 등장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예전에는 일본의 패션디자이너들이 잘하였으나, 지금은 한국 디자이너들이 훨씬 민첩하게 잘 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디자이너들은 파리나 밀라노, 런던, 뉴욕 등에서 입수한 패션상품을 일본 내에서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적어도 10~15일 정도 걸렸으나 동대문은 3~5일 정도면 끝낼 수가 있다"며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패션정보를 입수하면 24시간도 채 안걸려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 바로 동대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제는 거꾸로 일본의 디자이너들이 한국으로 찾아와 상품을 구입해가는 것이 훨씬 빠르며 비용도 싸게 먹히므로, 구태여 그 먼 곳까지 많은 돈을 써가며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세계 단 하나 원스톱 패션가 '원스톱 공간'

우선 동대문상권은 IMF이전까지 백화점이 리드해왔던 값비싼 브랜드 중심의 패션산업이 IMF 이후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자 중저가 고품질 패션상품 위주 전략과 함께 현대식 건물짓기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품질은 백화점, 가격은 재래시장'이라는 기치 아래 우선 동대문 상권 내에서는 의복에 관한 것이라면 기획에서 -> 원부자재구입 -> 생산 -> 판매 -> 운송까지 모든 체제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뭐든지 구할 수 있는 완벽한 원스톱 시스템인 것이다. 

수만개의 점포와 공장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이처럼 한 장소에 한가지 산업체(의복)가 집적되어 있는 곳은 패션대국인 프랑스, 이태리, 일본 등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패션 섬유 산업 집적지 동대문은 미국의 벤쳐 집적지인 '실리콘 벨리'와 비교하여 동대문 '패션벨리' 또는 '패션클러스터(집적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디자인기획력

모든 점포 주인인 동대문 상인들이 디자이너이며, 그들은 디자인 정보까지도 동대문 상권내에서 구할 수 있다. 외국잡지나 패션 기획을 판매하는회사들이 주위에 포진하고 있으며 길가 노점에서도 외국 유명 패션잡지를 팔고 있을 정도이다.

원부자재 구입

동대문 내에서는 의복에 관한 재료라면 없는 게 없는 소위 '만물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생산품에서 외국 수입품까지 패션 용품이라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장식할 수 있으며 없는 것이 없다.

특히 원단, 단추, 실, 지퍼, 스냅단추, 레이스, 자수용품, 프린트물, 솜, 심지, 패드, 가죽, 악세사리, 잡화, 장식품, 포장용 등을 취급하고 있는 동대문종합시장이나 동화상가를 둘러 본 외국의 바이어는 그 규모나 전문성에는 혀를 내두르는 것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러한 거대한 원스톱 섬유패션 집적지는 없다고 말한다.

봉제공장

청계천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주위 반경 2킬로미터 이내에 수만개의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다. 이처럼 한 곳에 벌집처럼 모여있는 곳을 파리나 밀라노, 도쿄 등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동대문만의 특징이다.

따라서 미싱 2-5대 규모의 가내공업형태로 소수량 다품종 생산이 가능해 요즈음같은 패스트 패션 시대에 맞아떨어지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판매

4만 2천여개의 점포가 도소매업을 하고 있으며 도매 -> 소매 -> 재고품(땡)처리는 물론 길가 노점상까지 밀집되어 있어 상품 판매과정에서 재고가 쌓이지 않고 완벽히 처리되므로 완벽한 유통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운송

오토바이에 의한 퀵서비스 운송체제는 도심정체로 인한 납기지연을 막아주며 특히나 속칭 '하꼬비'들의 '핸드 투 핸드' 서비스는 세계적으로 퀵 운송서비스를 자랑하는 DHL, SKYPAK,TNT, FEDEX, EMS 등의 '데스크 투 데스크' 서비스는 한물 가버린 원시시대 운송수단이 되어버렸으며, 이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할뿐 아니라 민첩한 스피드를 주무기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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