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들은 홍대 앞 상권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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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들은 홍대 앞 상권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나
  • 이효은 기자
  • 승인 2017.03.03 2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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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균, 김남주 공저 책 '골목사장 생존법'에서

[위즈뉴스] '홍대 앞 상권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90년대 신촌의 뒷골목쯤으로 인식되던 홍대는 어떻게 힙한 문화의 중심지가 됐을까?

일러스트레이터 김남균과 변호사 김남주가 쓴 책 '골목사장 생존법'에는 주인공 철수가 골목사장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갖가지 어려움에 대한 법률적인 조언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 홍대 앞 상권이 형성된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홍대 앞 상권 형성 히스토리

홍대 앞 상권 형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1990년대로 올라가야 한다.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홍대 앞은 신촌의 변두리였다. 1990년 초반 상수에 있는 서울화력발전소의 발전 원료가 석탄에서 LNG로 바뀌면서 홍대 앞 (지금의 주차장 거리)을 지나며 석탄을 옮기던 철로가 철거되기 시작했다.

그후 신촌의 변두리였던 홍대 앞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1990년대 경제부흥기를 통과하며 자본이 생긴 부모들은 홍대 미대에 다니던 자식들에게 신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홍대 앞에 작업실이라도 차려줄 요량으로 공간을 임대받았다.

임대받은 공간은 '아틀리에-작업실'의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업실에서 그들은 인생고민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예술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고 친구가 친구를 데려와 소개시켜주었다.

젊은 예술가들은 더 재미있는 놀이를 찾고자 했다. 거칠게 생산한 것을 작은 전시나 공연을 통해 보여주면서 그들의 영역을 활발하게 확장하였다.

젊은 예술가들이 주도한 '실험'과 '자유'

그런 과정이 연속되며 보다 많은 젊은 예술가와 관람객이 홍대 앞을 찾게 되었고 '홍대 앞'은 실험적이며 자유로운 모든 젊은이들의 탈출구라는 이미지를 형성시켜 나갔다.

예술가들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동서고금을 떠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도, 뉴욕의 브루클린도, 러시아의 아르바뜨 거리 등도 모두 예술가들이 먼저 생활했던 곳이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삶이 조명되고 여러 노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세계인이 사랑하는 곳이 되었다.

책 '골목사장 생존법' / 김남균, 김남주 공저, 한권의책 출간

최근에는 문화에 기반을 두는 경제성장 알고리즘을 이용하기 위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술가들과 함께 도시에 버려진 폐공장 등의 공간을 꾸미는 작업을 통해 도시 재생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들 주변으로 모이게 된 것일까?

한바디로 그들이 '잘 먹고 잘 놀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늘 보다 재미있게 놀고먹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누군가는 놀고먹는 일에 무슨 연구까지 하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결국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방법, 즉 여러 가지 형태의 문화가 융합되며 만들어지는 콘텐츠와 직결된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는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참여하게 하며 서로를 불러모으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입소문이 나면 홍보의 파급력은 더 커진다.

도시에 생기를 불어 넣는 예술가들의 활용

특히 이러한 에술가들의 활동은 생기를 잃은 도시와 만났을 때 큰 힘을 발휘한다. 최근에는 예술 관계자뿐 아니라 정치가와 지방자치단체 행정가들이 나서 예술가와 함께 하면서 지역 활성화 정책을 만들어나가기도 한다.

축제같은 경우 지역민뿐 아니라 정치인들이나 행정가들이 서로 욕심을 내어 조직위원장 같은 보직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문화 예술에 조예가 깊다는 이미지와 함께 추억을 공유하게 하고 문화지역으로 격상시켰다는 고급한 이미지까지 적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비단 정책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새롭고 다양한 문화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국적인 음식과 이색적인 인테리어로 꾸며낸 공간이 충분히 일상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발걸음은 점점 늘어나, 단 하나의 가게가 유명해져도 골목 전체의 경기가 살아나는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렇게 층층이 만들어진 문화는 사람들의 추억과 함께 여러 루트로 알려지며 확산되어 더 넓은 지역에도 경제적인 혜택을 주기도 한다.

예술가들의 '작은 도발'로 시작된 홍대 상권

홍대 앞도 처음에는 예술가들의 작은 도발(?)로 시작하여 지금의 대규모 상권을 형성시킨 촉매 역할을 하였다.

어린이 놀이터였지만 매주 일요일 '플리마켓(Flea Market)'을 열면서 시작된 '홍대 앞 예술시장'도 예술가들의 작은 도발 중 하나였다.

마이너 작가들의 작품이 공개되자 구경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전문가들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여러 형태의 예술작품들이 거래되었다.

일부 작가는 메이저 갤러리와 함께 해외에서 전시를 열며 서열과 엘리트주의가 만연했던 미술계 지형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한 영역의 판도까지 바꿀 정도의 영향력이 생기자 홍대 앞 놀이터는 젊은 작가들이 도전하고 싶은 장소가 되었고 자유롭지만 책임있는 자리가 되었다.

이후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홍대 앞 작은 클럽들이 모여 '클럽 데이'를 만들며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홍대 앞 거리는 신선한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후 클럽이 모인 골목 뒤의 2층이나 지하에 비교적 저렴한 공간을 임대받아 운영하는 대안공간이나 문화시설이 들어서며 문화 예술 생산자나 향유자들이 유입되었고 유동인구 확산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시에 임대료는 법과 상도를 넘어 급상승하고 말았다. 급기야 높아진 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예술가와 그들과 함께 기획을 돕던 예술기획자들은 하나 둘 홍대 앞을 떠나 이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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