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대 이정동 교수의 '한국 산업을 지배하는 그릇된 고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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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 이정동 교수의 '한국 산업을 지배하는 그릇된 고정관념'
  • 이효은 기자
  • 승인 2017.09.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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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동 교수 등 26명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공저 <축적의 시간>중

이정동 교수 등 26명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들이 우리 산업의 당면 문제를 진단한 책 <축적의 시간>에서는 '우리 사회의 틀과 국가정책의 틀이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는가?' 등 6개의 공통질문을 중심으로 26명의 교수들에게 개별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중 이정동 교수가 쓴 내용 중 '한국 산업을 지배하는 그릇된 고정관념'을 소개한다.

 

한국 산업을 지배하는 몇 가지 그릇된 고정관념들

 

각 분야의 멘토들은 다양한 산업 및 연구 현장의 사례를 들어 우리 산업이 처한 현실을 실감 나게 묘사해 주었다. 26명의 멘토 의견을 모아 살펴보면서,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우리 산업계 혹은 더 넓게 우리 사회가 공통으로 빠져있는 착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그릇된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중 대표적인 것들을 정리했다. 이와 같은 고정관념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산업이 당면한 위기의 근본 원인과 미래 전략의 열쇠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정관념들

 

고정관념1. 생산 활동은 개도국으로 아웃소싱하고,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지식노동을 해야 한다.

 

생산 활동은 3D 산업이기 때문에 아웃소싱하고, 우리나라는 깨끗한 고부가가치의 지식노동을 하도록 국제적으로 분업해야 한다는 일반의 잘못된 시각에 대해 멘토들은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 고정관념과 달리 현실에서는 생산현장이 없이는 질 좋은 고용을 창출할 방법이 없고, 생산을 지원하는 지식기반서비스업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생산현장이 없으면 고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는 고급의 경험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여지도 없다. 불행하게도 지난 10여 년 이상 우리나라에서는 생산 공장을 개발도상국으로 내보내고, 국내에서는 지식산업이나 서비스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가 팽배했는데, 이는 미국을 포함한 산업 선진국이 생산현장을 고도화하거나 아웃 소싱 해오던 기업의 생산 활동을 다시 자국 영토 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정반대의 길이다.

 

고정관념2. 첨단 특허 한 건, 세계적 논문 한 편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

 

멘토들은 탁월한 특허와 논문이 분명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결정적으로는 이 혁신적 아이디어가 스케일 업(scale up)되어 실용화 단계로 나가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스케일 업 할 수 있는 역량은 오랜 경험이 축적돼야 비로소 확보할 수 있는 고도의 축적된 경험지식의 영역이라는데 어려움이 있다. 국내 산업계는, 전례가 없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스케일 업 할 수 있는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설사 국내에서 세계적 논문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 혜택은 다른 나라가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각오하면서 스케일 업 할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정관념3. 필요한 경험과 지식은 살 수 있다.

 

멘토들이 가장 우려하는 잘못된 관념의 하나는 경험과 지식은 돈으로 사면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우리 산업계도 이미 표준적인 기술에서는 글로벌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창의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고급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지식은 교과서나 매뉴얼, 논문 혹은 특허에 명시적으로 표시된 지식과 달라서 문자나 기타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사람의 머릿속에, 그리고 일하는 방식, 즉 루틴에 체화되어 있어서 심지어 필요한 경험지식을 가진 기업을 인수, 합병을 한다고 하더라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멘토들은 여러 가지 실제 사례를 통해 결국 최고급의 기술 역량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에서 지름길이 없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며,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축적해나가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정관념4. 중국은 우리의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멘토들은 한·중 관계에서 한국이 부품소재를 공급하면 중국이 조립하거나, 혹은 한국의 기업들이 설계도면을 보내면 중국이 생산하는 방식의 도식적 관계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 강조한다. 이미 생산 공장이 아니라 혁신공장(innovation powerhouse)으로 등장했다. 공학인력 배출 수, 논문 및 특허의 양과 질, 그리고 생산현장에서 제시되는 창의적 아이디어의 사례를 고려할 때, 혁신의 관점에서 중국은 이미 대부분의 산업 영역에서 한국을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부 멘토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어떤 품목의 경우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이미 상식이 되었기 때문에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중국에 대해 가져왔던 사고방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말하는 것이다.

 

고정관념5. 한국 대학의 공학교육이 급속히 발전했다.

 

국제적 평가지표로 볼 때 한국 대학의 공학교육 순위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멘토들은 공통으로 여전히 학과 간 장벽이 높고, 논문 위주의 평가로 산업계의 현실과 더욱 거리가 멀어지는 방향으로 교육연구체제가 형성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개념 설계와 같이 창의적인 역량을 가르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특히 온라인 강의의 확산처럼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기초적인 학문에 대한 교육이 무시된 채 무분별하게 난무하고 있는, 소위 준비되지 않은 융합교육에 대해서도 경종의 목소리를 던지고 있다.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원인

 

산업계 의사결정자들이 사회적 오피니언 리더들이 흔히 빠질 수 있는 위와 같은 고정관념들은 무엇보다 통계적 착시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 즉, 글로벌 수준에 오른 극소수 대기업들 혹은 극소수 대학의 성과가 과대평가되면서 평균적으로 우리 산업계가 질적으로 성장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또한, 과거 고도성장기의 모방추격형 루틴을 유지해오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익숙해서 아예 문제로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잘못된 고정관념이자, 착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멘토들은 산업 분야가 다르지만, 공통으로 우리가 빠져있는 고정관념을 깰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이러한 고정관념들을 낳게 하는 우리 산업의 현재 특질, 즉 더욱 근본적인 관점에서의 원인분석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멘토가 그 원인으로서 우리 산업이 개념 설계의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것은 그동안 경험의 축적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압축성장의 필연적인 부작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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