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과 텐센트의 차이, 중국 인터넷 종사자들의 자신만의 방법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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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과 텐센트의 차이, 중국 인터넷 종사자들의 자신만의 방법 찾기
  • 이효은 기자
  • 승인 2017.09.0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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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샤오보 著 <텐센트-인터넷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

텐센트가 1998년에 창업한 이후 글로벌 인터넷의 거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우샤오보 저 <텐센트-인터넷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에서는 텐센트의 발전 과정을 통해 중국 인터넷 기업의 성장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 페이스북과 텐센트의 차이를 제시하며 중국의 인터넷 업계 종사자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갔는지 소개한다. 


<마화텅과 저커버그>

<페이스북 이펙트>의 저자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은 “페이스북은 지금까지 가장 우수한 응용프로그램을 설계해내지 못했지만, 저커버그는 하나의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부담을 살짝 덜어내며 더는 주도면밀해질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2007년 5월 24일, 페이스북이 샌프란시스코에서 ‘F8개발자 포럼’을 개최한다. 이제 막 23세 생일을 보낸 저커버그가 티셔츠에 발가락이 보이는 고무 샌들을 신고 750명의 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을 맞잡고 함께 혁명을 일으켜 봐요.” 페이스북은 모든 개발자에게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개방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혁명적인 운동으로, 이후 6개월 동안 25만 명의 개발자가 페이스북과 연계한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듬해 페이스북은 개방 심사 기준을 개선하고 평점 시스템을 도입한다. 개방 환경이 보다 질서를 갖춘 것으로 보이더니, 결국 대박을 터뜨린다. 2008년 5월, 페이스북의 전세계 방문량이 처음으로 마이스페이스의 방문량을 돌파했다. 2009년 9월에는 이용자가 3억 명까지 급증했고, 180여개국에서 100만 명이 넘는 등록 개발자가 페이스북을 창업 플랫폼으로 이용했다.

페이스북이 핫하게 떠오르자 당연히 중국 모방자들은 이를 맹목적으로 따라하기 시작한다. 2008년 5월 30일, 천이저우의 샤오네이닷컴이 API 개방 플랫폼의 테스트 버전 출시를 선언하며 중국 최초의 개방 플랫폼을 실험한 본토 SNS 사이트가 되었고, 이후 텐센트의 51도 자신의 게임 플랫폼을 개방한다. 

텐센트 내부에서 개방은 줄곧 금기시되는 화제였는데, 이런 모습은 2011년이 지나서 미묘하게 달라진다. “우리가 그 화제를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텐센트는 페이스북과 다르고, 중국은 미국과 달랐죠.” 마화텅이 훗날 말했다.

텐센트와 페이스북의 차이는 다섯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 페이스북이 개방 전략을 실시할 때는 아래에서 위를 공략해야 하는 후발주자였다. 이렇게 규칙을 뒤엎고 질서를 재구성하며 마르크스 명언을 그대로 답습한 저커버그는 개방 중 ‘속박에서 벗어나, 전세계를 얻었다.’ 한편 텐센트는 2006년 이후 이용량 최대, 시장가치 최고의 선도기업이 된다. 기존 질서의 최대 수혜자인 마화텅의 입장에선 개방이 텐센트에 결정적인 서장을 안겨줄 것 같지 않았다.

둘, 텐센트와 페이스북은 관계 사슬의 기반 설계에서 선천적인 차이가 있다. 페이스북은 태생이 소셜형 커뮤니티로 친구 관계가 공개되어 있지만, QQ는 인스턴트 메신저 도구에서 출발한 회사로 관계사슬이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다. ‘친구의 친구가 반드시 나의 친구는 아닌데’ 전면 개방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논리에 어긋났다. 실명제 페이스북과 비교해 같은 SNS 커뮤니티인 QQ 공간은 강제 실명제를 시행하진 않았지만, 공간에 들어온 사람 대부분 친분이 있는 사이로 사적인 상호활동이 가능했다. 이것이 미디어 성향의 블로그와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QQ공간은 QQ와 처음부터 결합되어 더 풍성하고 다양한 소통 방식과 수익 모델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페이스북보다 앞서 있었다. 페이스북은 2008년이 돼서야 자신의 IM을 개통한다.

셋, 페이스북은 플랫폼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 반면 텐센트는 ‘플랫폼+제품’ 유형으로 그 자체로 중국에서 가장 우수한 제품 개발자였다. 전면 개방한다면 ‘오른손과 왼손이 싸우고’, ‘심판과 선수가 한 곳에서 경쟁하는’ 난감한 국면이 조성될 것이다. 텐센트는 이를 받아들이고 유지할 수 없었다.

넷, 수익 모델에서 페이스북의 진짜 관심은 응용프로그램이 플랫폼에서 만드는 정보량이었고 수익은 광고로 창출했다. 광고가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퍼센트로 매우 높았으며 제3자 애플리케이션으로 나눈 수익은 추가 보너스 정도에 불과했다. 텐센트의 수익은 가상 부가 서비스와 온라인 게임에서 나왔고, 커뮤니티 광고는 적어서 언급할 가치가 없었으며, 중국 이용자에게 환영받지도 못했다.

다섯, 페이스북의 글로벌 모델과 비교해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는 중국은 ‘외딴 섬과 같은 시장’이다. 외부인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없고, 중국 인터넷 회사가 나가기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텐센트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전 세계로 진출한다 해도 제2의 페이스북이 되는 일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더 많은 차이점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상술한 다섯 개만으로도 텐센트가 페이스북의 길을 위험하다고 여기기에는 충분할 것 같다. 한 텐센트 임원의 기억에 따르면, 2011년 여름이 오기 전 마화텅은 총재 사무실에서 열린 회의(텐센트의 최고 행정 회의로 2주에 한 번 열린다)에서 임원들과 개방을 화제로 진지하게 토론했다. 최종적으로 그들이 걸음을 멈춘 이유는 당시 중국 개발자가 당면한 환경이 복잡했고, 개방이 이용자 정보 보안에 영향을 미칠텐데 그에 대한 대비가 미비했기 때문이었다. 이 신중함이 마화텅과 저커버그의 가장 큰 차이점일지도 모른다. ‘저커버그를 마음에 들어한다고 해서 마화텅이 티셔츠에 발가락이 드러나는 고무 샌들을 신고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후 사실이 증명하지만, 텐센트가 페이스북의 붐에서 다른 태도를 취한 게 어쩌면 정답이었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비즈니스상으로는 적절했다. 중국에서 가장 충실하게 페이스북을 모방하던 샤오네이닷컴은 페이스북이 미국에서 거둔 거대한 성공까지 복제해내지는 못했다. 전이저우는 2009년 8월에 이름을 런런왕으로 바꾸고 2011년 5월 4일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다. 하지만 런런왕은 이듬해 적자의 늪에 빠졌고, 계속 이상적인 수익 모델을 찾아내지 못했으며, QQ공간과 액티브 유저 수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미국의 전략사상가 존 갤브레이스는 일찍이 “우리가 미국에서 얻은 경험으로 인도나 중국을 바라본다면, 절반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절반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이 소셜 네트워크 붐에서 다시 생생하게 구현되었다. 2009년 5월 이후 1년여 동안, QQ공간은 미국인은 거의 상상하지 못할 매우 의외의 방식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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