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꿀팁]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드는 '다섯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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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꿀팁]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드는 '다섯가지 방법'
  • 이효은 기자
  • 승인 2017.05.18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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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신영 기자의 책 <한국의 젊은 부자들>에서
이신영 기자의 책 <한국의 젊은 부자들> / 사진=예스24

[위즈뉴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드는 다섯가지 방법'

이신영 기자는 조선일보 사회부와 위클리비즈, 디지털뉴스본부를 거쳐 경제부에서 일하며, 2012년부터 조선일보 주말 경제 섹션 ‘위클리비즈‘에서 2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인과 예술가, 노벨상 수상자 등 100여 명을 인터뷰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한국의 젋은 부자들>에서 이신영 기자는 돈, 경험, 기술, 학벌 등 아무것도 없이 평균 나이 33세로 연평균 매출 184억 원의 회사를 만든 사람들을 대거 소개하고 있다.

이 기자는 그중에서도 PC통신시절 유명한 '차덕후'로 수제자동차를 만드는 회사 '모헤닉 게라지스'를 창업해 코스닥 상장까지 앞두고 있는 김태성 대표의 사례를 들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드는 방법 5가지'가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드는 다섯 가지 방법

경기도 파주 탄현면에 가면 구형 현대 갤로퍼 두어대가 세워져 있는 창고형 건물이 나온다.

지난 11월 말,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강력한 엔진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빨간색 작업복을 입은 남성 여러 명이 자동차에 쓰인 배선을 자르고 연결했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수제 자동차 기업인 모헤닉 게라지스(Mohenic Garages)다.

이곳은 사실 국내 자동차 업계에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곳이다.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진흥공단, 산업자원통상부 등 산업을 관장하는 주요 기관 들이 자동차 산업이 정체되어 있는 국내 현실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는 '기대주' 중 하나다.

기계 자동차 설비를 갖춘 양산차 공장에서 차를 한 대 만드는 데는 대략 20-30시간이 든다. 반면, 모헤닉 게라지스에서 20여 명의 직원이 한달에 만드는 차는 한두 대에 불과하다. 자동차 골격인 캐빈과 프레임 바만 남겨놓은 채 엔진, 외관, 도장, 샌딩, 인테리어까지 모두 손으로 조립하고 만들고 디자인한다. 이런 작업을 '리스토어(restore)'라고 한다.

기계설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수제로 차를 만드는 글로벌 기업인 페라리, 롤스로이스, 파가니 같은 곳이다.

모헤닉 게라지스가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것은 단지 제조 방식만이 아니다.

오로지 현대자동차의 구형 갤로퍼만 작업한다. 1991년에 시장에 나온 현대자동차 갤로퍼 구형 모델을 완전히 해체하고, 처음부터 새로운 차로 만들어낸다. 원목을 이용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바늘이 돌아가는 영국제 계기판,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레트로 오디오, 고급 카펫이 깔린 내부, 갤로퍼를 기반으로 6가지 종류의 모델을 낸다.

이들이 만든 자동차의 성능이나 편의 장치가 일반 시판 자동차에 비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판매가는 웬만한 외제차보다 비싸다. 모델과 옵션에 따라 3000~8000만원에 달한다. 그

럼에도 2018년 2월까지 주문이 밀려 있다. 2014년 창업 이후 50대가 팔렸고 누적 매출은 수십억원에 달한다. 차를 팔아 남기는 영업이익률은 30%다.

게다가 모헤닉 게라지스는 벤처캐피탈, 고액자산가들의 투자금 100억 원을 가지고 전남 영암에 수제자동차 전문공장(연간 100~200대 생산 가능)을 짓고 있다. 초창기 5000원짜리 비상장 주식은 최근 회사 가치가 200억 원을 넘으면서 주당 12만 원을 넘어섰다. 내년에 코스닥에 상장할 계획이다. 창업 3년 만에 '잭팟'을 노리는 단계의 문턱까지 와 있는 유망기업이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모헤닉 게라지스의 김태성(45) 대표는 홍대 목조형학과를 졸업하고 가구회사, 패션 잡지 CEO를 지내다 본인의 오랜 취미인 자동차로 창업을 했다.

이신영 지음, 메이븐 출간 / 사진=예스24

그는 어째서 수제 자동차를 만들게 된 것일까.

이신영 기자의 <한국의 젊은 부자들>에서 김 대표는 이렇게 얘기한다.

"수제차는 기술력이 뛰어난 요즘 차처럼 편의 장치가 많지 않습니다. 시속은 150~160km정도 찍죠"

"그러나 수제차는 인간 본연의 감성적 가치를 건드립니다"

"지금 시대에서 최첨단 기술력은 흔합니다. 그러나 투박하지만 손으로 만드는 것에 훨씬 사람들이 공감합니다. 가령 저희가 만든 계기판은 바늘로 표시됩니다. 숫자, 디지털에 사람들이 질려있거든요.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게 맞는 가장 감성적인 디자인의 차는 60~70년대에 많이 나왔는데 그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공략한 것입니다"

김 대표는 20여 년 전부터 차에 미쳐 있는 '차 덕후'다.

1996년 PC통신 하이텔에 '엘란'과 '아우디TT' 등 이른바 자동차 덕후들을 위한 동호회를 만들어 운영했다. 동호회에서 만난 회원들끼리 평일이건, 주말 밤이건 만나 자동차 경주를 즐겼고,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자동차 이야기를 해왔다.

그러나 일은 전공을 따라갔다. 홍대 목조형학과를 졸업하고 '더 디자인'이라는 가구회사를 차려 10년간 운영했다. 고급 원목 등의 재료를 이용한 디자인 가구로 한때 전국 40여 곳에 매장을 내고 70~8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다 저렴한 중국 카피 제품이 늘면서 사업이 기울었다.

2008년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면서 빈손 신세가 됐다. 그 다음 손댄 사업은 패션잡지 (헤니 하우스)다. 사진 찍는 취미를 살려 패션 피플들의 파격적인 의상과 노출을 싣는 잡지였다. 유명 사진작가들을 섭외해 '센슈얼'한 잡지를 표방하고 광고 없는 지면으로 나름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독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느린데다 투자유치를 받지 못했다. 결국 2012년까지 발행하다 자금난을 겪었다.

"2000권 정도를 판매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데, 최대로 팔아 본 게 1000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희가 잡지를 팔면서 선물로 준 프린팅 티셔츠가 더 인기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티셔츠를 더 만들어 백화점과 편집숍에 납품했죠. 큰돈은 못 벌었지만 월수입 수백만 원 선은 유지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2013년 캠핑을 떠나기 위해 차를 알아봤다. 4륜 구동의 갤로퍼가 눈에 띄었다.

"1992년 출시된 갤로퍼는 사실 1982년 미쓰비시에서 나온 파제로를 기반으로 한 자동차에요. 당시에도 큰 인기를 얻은 베스트셀러였고, 내구성이 좋은 클래식한 차였죠"

그는 차를 개조하고 싶었다. 물과 자갈밭, 거친 흙길을 달릴 수 있는 이른바 '오프로드용' 자동차이면서, 디자인적으로 클래식한 완성도를 가진 차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그는 공업사에 자신의 디자인 관점으로 차를 완전히 새롭게 뜯어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당초 600만원을 예상했는데, 더 좋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 120만 원이 들었다. 차를 새로 뜯어고치는 과정과 자신의 디자인 작업을 블로그에 꾸준히 올렸는데 차 마니아들이 이에 열광했다.

"사실 자동차 창업은 전혀 꿈꾸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 디자인으로 개조한 차가 인기를 얻으면서 저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주로 경쟁사라 할 수 있는 실내복원 업체들이 '저것은 거짓말이다'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겁니다. 거기에 화가 나서 내가 직접 새롭게 디자인한 차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한 것이죠"

그는 갤로퍼 구형 차량을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차로 개조해 주겠다고 인터넷 카페에 올리고 희망자를 모았다.

자신이 직접 리스토어 디자인을 하고 작업은 자동차 공업사에 맡기려는 계획이었다. 개조비용이 대당 3000만 원 정도로 비싸서 네다섯 명만 참여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려 40여 명이 개조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며 돈을 냈다. 순식간에 1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왔다.

그는 이 돈으로 아예 파주에 공장을 짓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디자인 관점을 담은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오랜 기간 사랑해온 자동차란 취미가 직업이 되고, 창업 아이디어가 될 줄 몰랐다"고 한다.

"성공은 10%의 가망성을 크게 볼 줄 알 때 찾아옵니다"

"저는 사업은 지나치게 이성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90%의 창업 아이디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10%의 가망성을 진짜 성공하게끔 집념을 가지고 집중하는 미친 놈이 창업해야 합니다"

김 대표의 창업기를 보면 뒤늦게 자신이 미치도록 사랑하는 자동차라는 취미를 '운 좋게 우연히' 창업으로 성공시켰다는 느낌이 있다. 물론 운도 매우 크게 작용한다. 그 누가 수제자동차에 사람들이 열광할 줄 알았는가.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 대표가 창업 3년 만에 상장까지 바라보게 될 정도로 회사를 키우게 된 데는 다섯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 기존에 해오던 일을 하다 창업에 확신이 들 때 기존 일을 접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단 자신의 패션잡지 <헤니하우스>를 기반으로, 티셔츠를 꾸준하게 팔았다. 월수입은 수백만원 선으로 나쁘지 않았다. 부족한 수입은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보탰다.

그는 그간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적도 있지만, 밑바닥으로 추락한 적도 있다. 그런 그가 얻은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실패는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경험이지만, 아무런 '플랜B'도 없이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 김 대표는 자신의 직업은 유지하면서 본인이 개조한 갤로퍼 차량 디자인을 내세워 고객들을 모집했다. 40여 대를 만들어 달라며 확실한 창업 자금이 들어왔을 때, 그 돈으로 파주에 공장을 세우면서 기존의 일을 접었다. 자신의 자본금은 '0원'을 쓴 것이다. 일반인들로부터 뜻밖의 '크라우드 펀딩'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타이밍이 적절했다. 

그가 창업에 나섰던 2014년은 LTE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스마트 워치, 사물인터넷, 드론 등 수많은 최신 IT기술들이 우후죽순 주목을 받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수제로 만든 클래식한 감각의 자동차가 오히려 인기를 얻을 것으로 봤다. 

"사람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라고 저는 해석했습니다"

"가령 스마트폰이 2G에서 3G로 가는 것은 체감이 가능합니다. 그때는 빨라진 스마트폰을 사람들이 좋아하죠. 그러나 3G에서 4로, LTE로 갈 때 속도의 큰 차이를 못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약간 더 빨라졌다'는 정도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데려가기는커녕 인간을 버리고 가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2016년 초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예로 들었다. 당시 이 대결만으로 구글의 시가총액이 58조 원이 늘었다.

"만약 알파고와 알파고가 대결했다면 구글의 시가총액이 올랐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이세돌이라는 '인간'에 사람들이 감정이입을 하면서 사람을 응원했기에 가능한 것이라 봅니다. '클래식'과 '사람 본연'에 대한 갈망이 사람들 사이에 생긴 겁니다."

셋째, '자동차 덕후이면서 비전공자'들로만 차를 만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차 덕후이지만 자동차를 직접 조립하는 자동차 기술은 없는 '비전공자'다. 그러나 그는 최초에 본인을 '차를 만드는 사장님'이 아니라, '디자이너이자 작가'로 정의했다. 가구를 만들든, 잡지를 발행하든 공통점은 '상상하는 것을 디자인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생각으로 자동차의 외관과 내부의 디자인에 자신의 상상을 현실화했다. 자동차를 실제 조립하고 배선을 찢고 연결하고 ,도장과 도색 작업은 6개월~1년이면 배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전공과 전문성이 모인 '융합'의 정신이다.

회사 직원 35여 명은 두산 같은 대기업, 대학교수, 연구원을 관두고 온 사람들이다. 직원 가운데 고졸 비중은 10%도 안된다. 4년제 대학에 석박사 학위 소지자도 있다. 핵심은 실내건축과 디자인, 재료공학, 기계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 인재들이란 점이다.

채용 전제형 연수생(인턴)을 뽑아 운영하는데, 대부분 자동차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회복지사, 가죽가방 디자이너, 서울대 공대생 등 자동차 정비나 기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인재들이 일하고 있다.

사업 초창기에는 자동차 정비업에 종사한 사람들과만 일을 했다. 그러나 곧 현실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

"자동차에 대한 세세한 지식과 이론, 기술력은 물론 좋지만, 자동차를 A-Z까지 재창조하는 작업에서는 그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자동차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전문성이 오히려 새로운 개념의 차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파격적으로 '비전공자'만 뽑기 시작했다.

넷째, 위험에 대한 대처법이다. 

초기 기업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인재 확보와 인건비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3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주기 어렵다. 그런데 많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5000만 원~1억원의 고연봉을 주며 데려온다. 이 때문에 사업 비용이 높아져 회사가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모헤닉 게라지스가 인재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은 아낌없이 스톡옵션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초기에 2000-3000만 원, 1억 원 상당의 주식을 준 직원도 있어요. 지금 가치가 3억 원으로 뛰기도 했고요."

이러한 방식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주목받는 많은 스타트업들의 성공 방정식이기도 하다.

스타트업 성장의 기쁨을 직원들과 같이 나눌 수 있는 체계를 만들면서, 인건비에서 오는 사업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오너의 지분이 줄어든다. 그러나 회사가 당장 현금을 소진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성장기에 비용을 절갑할 수 있다.

다섯째, 브랜드의 확장이다. 

사실 모헤닉 게라지스의 주력 비즈니스인 수제자동차 제작은 장기적으로 아주 큰 대박을 칠 만한 사업 아이템은 아니다. 김태성 대표 역시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수제자동차를 넘어 더 큰 그림을 보고 계획하고 있었다.

장기적인 비전은 이 브랜드를 가지고 전기차를 양산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제자동차 사업에 전념하면서도 메탄올 연료전지 기술을 보유한 회사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조만간 전기자동차 시제품을 낼 계획이다.

'수제자동차기업'이라는 '클래식 브랜드'와 디자인을 뿌리로 삼아 새로운 개념의 전기차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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