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사이트] 외롭게 자란 아이는 왜 어른이 되어서도 외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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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사이트] 외롭게 자란 아이는 왜 어른이 되어서도 외로울까
  • 이효은 기자
  • 승인 2021.02.05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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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관계의 심리학' 최광현 지음, 21세기북스 출간
책 '관계의 심리학' 표지
책 '관계의 심리학' 표지

마당에 예쁜 제비꽃이 피어 있었다.

심리치료사 밀턴 에릭슨은, 우울증으로 자살 위기에 놓인 한 여성의 치료를 요청받고 그 여성의 집 앞에 도착했다.

제비꽃이 있었다.

에릭슨은 순간, 이 꽃을 심리치료에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정말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는데, 왜 그 재능을 썩히고 있나요? 저 제비꽃을 개화시키려면 정말 많은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데, 왜 그 재능을 발휘하지 않습니까? 이건 직무유기입니다"

에릭슨의 이 강력한 말을 듣고 여성의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여성은 주변에 누군가 결혼을 하거나 세례를 받거나 축하할 일이 생길 때면 제비꽃을 개화시켜 선물로 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비꽃을 선물받은 사람들이 늘어났고, 사람들은 이 여성을 아는 척하기 시작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빠져있던 여성은 자연스럽게 지역사회 일원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신간 <사람이 힘겨운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에 나온 이야기를 조금 다듬어 재구성해 봤다.

에릭슨이 예리한 관찰력으로 제비꽃이라는 '자원'을 포착해 그 여성을 치료했듯이, '해결 중심 테라피'는 이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전제하고, 강점이나 긍정적인 점을 찾아내 그걸 강화시키는데 집중한다고 한다.

이 책,
관계를 이야기하는 심리학인 <관계심리학>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참 유익하고 흥미롭다.

첫장을 펼치면 심리학계의 '그루' 칼 융의 어록이 눈길을 끈다.

"사람이란 존재는 상황에 따라 목적에 맞게 부속을 뜯어 손쉽게 바꿀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인간의 전체 역사를 안고 다닌다"

그렇지.. 사람이 어찌 갈아 끼울 수 있는 부속품일 수 있을까.

책에는 또, 이런 사례가 등장한다.

어린 시절 외로웠던 사람이 있었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않고 방치했고, 그래서 아이는 외로움 속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야했다.

그 사람이 성인이 되었다. 이제 더는 외롭지 않아도 되는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외로운 상황 속에 자신을 놓아 둔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까.

프로이트는, 어린시절에 트라우마를 경험했던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불행했던 어린시절의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관찰했고, 그것을 '반복강박'이라는 정신분석의 핵심개념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반면, 심리학자 보웬은 이런 현상을 '세대전수'라고 표현했단다. 그러니까, 한사람의 문제와 갈등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세대를 걸쳐 일정하게 하나의 패턴으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개인에 맞춰 한사람의 반복성이라는 측면에 집중했고, 보웬은 한사람의 반복성이 아니라 한 가족, 한 세대의 반복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사례들과 원인분석, 처방, 그리고 현대 심리학의 흐름과 발전사까지, 흥미진진하고 유익하다. 바로 나의 이야기,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어떨까.. 떠올려 보게 된다.

불행이든 행운이든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걸쳐 쌓이고, 전수되어 온 어떤 '형질'의 문제라는 것인데..

책을 읽다보니, 우리가 진정 후대에 물려줘야 할 것은 재산이나 신분 이런 게 아니라, 부지런히 선을 쌓아가는 '적선' 행위처럼 좋은 '품성', 좋은 '심성' 그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심리학을 읽었는데, 인생철학을 공부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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